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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색과 빛의 미학 – 동서양 건축의 장식미 비교: 단청과 스테인드글라스

by kkhin5124 2025. 10. 18.

장식에서 정신을 읽다

 

건축은 단순히 공간을 짓는 기술이 아니라, 그 사회의 정신과 미의식을 드러내는 예술입니다. 특히 장식 요소는 건축의 구조적 기능을 넘어, 시대와 지역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언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단청(丹靑)이, 서양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가 그 대표적인 예로 꼽힙니다. 두 장식은 모두 색채를 통해 공간의 의미를 강화하지만, 표현 방식과 담고 있는 세계관은 뚜렷이 다릅니다. 단청은 자연과 조화, 그리고 상징적 질서를 중시하지만, 스테인드글라스는 신성한 빛을 통해 초월적 세계를 구현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한국의 단청과 유럽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중심으로, 동서양 건축이 색과 장식을 통해 어떻게 서로 다른 미학과 정신세계를 표현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서양의 스테인드글라스동양의 단청
동서양 건축의 장식미 비교: 단청과 스테인드글라스

동양의 단청 – 색으로 조화를 설계한 건축미학

 

단청은 주로 목조건축물의 외벽, 천장, 기둥, 처마 밑면 등에 채색하는 장식 기법으로, 고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교 사찰과 궁궐, 누각 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단(丹)’은 붉은색, ‘청(靑)’은 푸른색을 뜻하며, 오방색(청·적·황·백·흑)을 중심으로 한 우주적 색채관을 반영합니다. 이 색들은 단순한 미적 장식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신성한 세계의 조화를 상징했습니다.

 

예를 들어 청색은 동쪽과 봄, 적색은 남쪽과 여름, 백색은 서쪽과 가을, 흑색은 북쪽과 겨울, 황색은 중심과 대지를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오행 사상에 따라 건물 전체는 자연 질서의 일부로 설계되었으며, 단청은 그 질서를 시각적으로 완성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단청의 기능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목재를 보호하고, 곰팡이나 벌레의 침입을 막는 실용적 효과를 지녔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색의 질서’로 공간의 위계를 표현한 상징성이었습니다. 궁궐의 단청은 복잡하고 화려한 패턴으로 왕권의 존엄을 나타냈으며, 사찰의 단청은 연꽃, 구름, 봉황 등 불교적 문양을 통해 깨달음과 초월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이처럼 단청은 장식 그 자체가 아니라, 건축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루는 통로였습니다. 색은 신을 위한 예배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속한 세계의 질서를 표현한 철학적 장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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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스테인드글라스 – 빛으로 신성을 구현한 공간예술

 

서양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주로 중세 고딕 건축에서 꽃을 피운 장식 예술입니다. 그 기원은 로마 시대의 유리공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12세기 이후 프랑스의 고딕 대성당(Gothic Cathedral)에서 신학적 의미를 담은 예술로 완성되었습니다.

 

고딕 성당의 가장 큰 특징은 하늘로 치솟는 첨탑과 넓은 창입니다. 이는 단순히 구조적 진보가 아니라, ‘신의 빛(Lux Dei)’을 내부로 들이기 위한 설계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바로 이 빛을 매개로 신성한 공간을 완성했습니다. 색색의 유리 조각은 성서의 장면, 성인들의 초상, 상징적 문양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햇빛이 비칠 때마다 내부는 ‘빛의 성서(Bible of Light)’로 변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Chartres Cathedral)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중심을 이루는 이 유리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며,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신성의 현현’을 시각화한 도상예술(iconography)입니다. 또한 당시 대부분의 신자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스테인드글라스는 시각적 교리교육의 도구로서 성경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결국 스테인드글라스는 인간이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창이었으며, 빛 자체가 신의 존재를 상징하는 서양의 종교적 세계관을 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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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빛 – 상징의 차이가 드러내는 세계관의 대비

 

단청과 스테인드글라스는 모두 건축을 장식하는 색의 예술이지만, 그 철학적 기반은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동양의 단청이 자연과의 조화, 균형, 질서를 강조했다면, 서양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초월과 구원, 신성을 향한 시선을 담았습니다.

 

단청은 건물 표면에 ‘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자연적 재료(광물성 안료, 식물성 염료)를 사용하여 물질의 생명력을 표현했습니다. 즉, 자연을 닮은 인간 중심적 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을 내부로 들이는 장식으로, 외부의 태양광이 성스러운 공간을 완성하는 초월적 빛의 미학을 구현했습니다.

 

또한 단청의 패턴은 반복적이고 대칭적인 구도 속에서 안정감을 주지만, 스테인드글라스는 서사적이고 극적인 구성을 통해 감정적 울림을 유도합니다. 이는 각각 동양의 내면적 명상 미학과 서양의 극적 표현미학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단청은 ‘색의 질서’로 세상을 이해하려 했고,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의 신성’으로 세상을 초월하려 했습니다. 이 차이는 곧 동서양 사상의 근본적인 대비, 즉 조화의 철학과 구원 신학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현대 건축에서의 계승과 해석

 

오늘날 단청과 스테인드글라스는 단순한 전통 장식이 아니라, 색과 빛을 통한 공간 연출의 원형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 건축에서는 단청의 색채감과 패턴을 현대 재료로 재구성한 사례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한국문화의 집(Kous)에서는 전통 단청의 색조를 유리, 금속, 조명 디자인에 응용하여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표현했습니다.

 

한편 서양 건축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정신을 계승한 빛의 건축(Light Architecture)이 나타났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Chapelle Notre-Dame du Haut)이나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Church of the Light)’는 색유리를 대체하는 형태로 자연광을 조형적 요소로 끌어들였습니다. 빛은 여전히 신성함과 감정의 통로로 사용되지만, 이제는 신을 위한 빛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빛으로 변화했습니다.

 

즉, 단청과 스테인드글라스의 미학은 여전히 현대 건축 속에서 색과 빛의 언어로 살아 있으며, 전통과 기술이 만나는 새로운 공간 미학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색과 빛이 만든 건축의 철학

 

단청과 스테인드글라스는 모두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건축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표현이었습니다. 단청은 색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동양의 세계관을,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으로 신성을 구현하려는 서양의 신학적 사고를 담았습니다.

 

두 장식은 시대와 재료, 목적은 달랐지만, 인간이 건축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자 한 동일한 열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색은 동양에서 질서와 균형의 상징이었고, 빛은 서양에서 진리와 초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요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건축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건축은 단지 공간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색과 빛으로 사상을 새기는 예술입니다. 동양의 단청과 서양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그 증거이자, 건축이 인간 정신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장식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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