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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세계건축사14. 낭만주의 건축: 감성과 역사, 자연이 어우러진 시대의 건축

by kkhin5124 2025. 10. 14.

이성과 질서의 시대를 넘어, 감성을 향한 회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 유럽 사회는 산업혁명과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급격히 변화했습니다. 기계와 합리성, 그리고 이성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였지만, 그 반작용으로 사람들은 다시 자연과 감정, 인간의 내면세계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은 문학, 미술, 음악뿐만 아니라 건축에서도 ‘낭만주의(Romanticism)’라는 새로운 양식으로 나타났습니다.

 

낭만주의 건축은 단순히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 중심적 감성과 역사적 상상력을 되찾으려는 문화적 운동이었습니다. 고전주의가 규범과 비례, 이성을 중시했다면, 낭만주의는 자유로움과 주관성, 상징성을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낭만주의 건축은 특정한 형태보다 정신적 태도와 시대적 감수성으로 정의됩니다.

 

이 글에서는 낭만주의 건축의 특징과 대표 사례, 그리고 그 철학적 의미를 살펴보며, 현대 건축에도 남은 그 영향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전의 반동, 감정과 상징을 향한 회귀

 

낭만주의 건축은 근본적으로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에서 출발했습니다. 18세기 신고전주의 건축은 그리스·로마의 조화와 균형을 이상으로 삼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그 지나친 규범성과 획일성에 피로감을 느꼈습니다. 낭만주의 건축가들은 이성보다는 감정, 규칙보다는 상상력을 중시하며 건축을 하나의 예술적 표현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이 시기 건축에서는 과거의 다양한 양식이 자유롭게 재해석되었습니다. 중세 고딕, 이슬람풍, 중국풍, 심지어 이집트풍까지도 낭만적 상상력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여러 시대와 문화를 뒤섞는 양식은 ‘역사주의(historicism)’로 이어지며, 낭만주의 건축의 중요한 특징이 됩니다.

 

특히 자연과의 조화가 강조되었습니다. 인공적인 기하학 대신 불규칙한 형태, 비대칭의 구조, 거칠고 생동감 있는 재료가 선호되었습니다. 예컨대 영국의 픽처레스크(picturesque) 개념은 풍경 속에 건축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미학을 추구했습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존재해야 한다는 사상은 이후 정원 건축과 도시계획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렇듯 낭만주의 건축은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감정의 시대를 건축으로 번역한 예술적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딕 리바이벌 – 중세의 정신을 되살리다

 

낭만주의 건축의 대표적 흐름 중 하나가 바로 ‘고딕 리바이벌(Gothic Revival)’입니다. 중세의 고딕 건축은 한때 비이성적이고 미신적인 시대의 산물로 여겨졌지만, 낭만주의자들에게는 오히려 영혼과 신앙,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는 순수한 건축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건축가 오거스트 퍼긴(Augustus Pugin)은 “고딕은 도덕적이고 기독교적인 건축”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는 런던의 국회의사당(Palace of Westminster) 설계에 참여하며, 고딕 양식을 국가의 상징으로 부활시켰습니다. 첨탑, 뾰족아치, 장식적 창문 등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정신적 상징이었습니다.

낭만주의건축의 대표적 건축물 런던의 국회의사당 전경
영국 런던의 국회의사당

 

고딕 리바이벌은 영국만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비올레 르 뒤크(Viollet-le-Duc)가 노트르담 대성당을 복원하며 중세 미학을 재조명했고, 독일과 러시아에서도 역사적 재현 건축이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옛것을 복제하려는 복고가 아니라, ‘역사를 통한 정체성 회복’이라는 낭만주의적 신념에서 출발했습니다. 당시의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정신적 공허감을 겪고 있었고, 사람들은 과거 속에서 진정한 가치와 공동체의 의미를 찾고자 했습니다. 낭만주의 건축은 바로 그 정신적 피난처로 기능했습니다.

 

자연과 풍경 속의 건축 – 감성의 무대

 

낭만주의 건축은 실내외의 경계를 허물며, 자연과 풍경을 건축의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영국과 독일의 풍경식 정원(Landscape Garden)은 낭만주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8세기 후반 영국의 스투어헤드(Stourhead) 정원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곳은 기하학적 대칭이 아니라, 호수와 언덕, 신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건축물은 자연의 일부처럼 배치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적 몰입을 유도합니다.

 

또한 낭만주의 건축은 ‘폐허의 미학’을 즐겼습니다. 완벽한 건물보다 무너진 성곽, 덩굴이 뒤덮인 폐허에서 인간의 유한함과 시간의 흔적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미적 감수성은 회화와 문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으며, 인간과 자연, 시간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사유하게 했습니다.

 

19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낭만주의 건축은 점차 역사주의 건축(Historicism)으로 발전하며, 다양한 과거 양식을 결합하는 절충주의(Eclecticism)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낭만주의 건축의 철학과 현대적 의미

 

낭만주의 건축은 단순히 과거를 흉내 내는 복고풍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정, 자연, 그리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었습니다. 건축이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면, 낭만주의 건축은 그 속에 정서와 기억, 상징과 서사를 담으려 한 시도였습니다.

 

현대 건축에서도 낭만주의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Kengo Kuma)는 자연 소재를 활용하여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회복하려 했고, 프랭크 게리나 자하 하디드의 건축에서도 형태의 자유로움과 감성적 표현은 낭만주의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낭만주의 건축은 “건축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을 담는 예술”이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이성과 감성 사이, 건축의 영혼을 찾다

 

낭만주의 건축은 산업화와 합리성의 시대 속에서 ‘인간다운 건축’을 회복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것은 돌과 벽돌로 만든 구조물이 아니라, 감정과 역사, 자연을 함께 품은 예술적 공간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건축은 여전히 기술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한 공간, 감성적 건축을 원합니다. 이는 낭만주의 건축이 남긴 가장 큰 유산입니다. 건축은 단지 기능이 아니라 감정을 설계하는 예술이어야 하며, 그것이 시대를 넘어 인간의 마음에 남는 건축의 본질임을 낭만주의는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