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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서양건축사10. 포스트모던 건축 – 해체와 융합으로 열린 새로운 건축의 장

by kkhin5124 2025. 9. 26.

모더니즘 이후의 새로운 물결

 

20세기 중반까지 건축의 주류는 모더니즘이었습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명제 아래 단순한 직선과 기하학적 형태, 합리적인 구조와 기능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건축은 차갑고 획일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도시 공간 속에서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건물들은 인간의 감성과 다양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흐름이 바로 포스트모던 건축(Postmodern Architecture)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순히 기존 양식을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적 양식과 현대적 요소를 뒤섞으며 유머와 상징을 담아낸 새로운 건축적 사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다성성(多聲性, plurality of voices)’입니다. 다성성이란 하나의 정답이나 하나의 미학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모더니즘이 모든 건축을 동일한 규범 안에서 통일하려 했다면, 포스트모던 건축은 다양한 문화적 맥락과 개별적 해석을 존중했습니다. 다시 말해, 건축은 한 가지 언어가 아니라 여러 목소리로 이루어진 대화의 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까지 건축 담론에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관점으로 평가됩니다.

 

포스트모던 건축의 탄생 배경

 

포스트모던 건축은 20세기 중반 모더니즘의 획일성과 기능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했습니다. 모더니즘 건축이 도시를 효율적으로 바꾸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는 저서 『건축의 복잡성과 대립성(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1966)』에서 “Less is a bore”라는 말을 통해 모더니즘의 단순성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건축이 다양한 요소와 상징을 수용하고, 역사적 맥락과 지역성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건축에서의 “다성성”을 강조하는 사조로 이어졌습니다.

 

포스트모던 건축의 주요 특징

 

포스트모던 건축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 역사적 양식의 재해석

고전 건축의 기둥, 아치, 장식 등을 현대 건축 속에 재해석하여 사용했습니다.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과거 양식을 유머러스하거나 상징적으로 차용했습니다.

 

  • 상징성과 장식성의 강조

모더니즘이 장식을 배제했지만, 포스트모던은 장식을 되살렸습니다.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하며, 색채와 장식적 요소가 적극 활용되었습니다.

 

  • 맥락성과 장소성

건축이 주변 환경과 역사적 맥락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습니다. 동일한 설계가 아닌, 각 장소에 맞는 다양성을 중시했습니다.

 

  • 유머와 아이러니

포스트모던 건축은 단순히 기능적 건물이 아닌, 때로는 풍자와 유머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예컨대 건물 외관에 전통적 요소를 과장되게 붙이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대표적 포스트모던 건축가와 건축물

 

포스트모던 건축의 대표적인 건축가와 건축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

벤추리 하우스(Vanna Venturi House, 1964)는 포스트모던 건축의 시초로 평가받습니다. 전통적인 박공지붕을 단순화하면서도 비대칭적인 창문과 입구를 배치해 모더니즘의 규칙성을 해체했습니다.

 

  •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

포틀랜드 빌딩(Portland Building, 1982)은 단순한 직육면체의 건물 외관에 고전적 기둥 모양의 장식과 색을 입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건축물은 포스트모던 양식의 상징으로 불립니다.

 

  • 찰스 무어(Charles Moore)

피아차 디 이탈리아(Piazza d’Italia, 1978)는 뉴올리언스에 세워진 인공 광장으로, 고전주의 양식의 기둥과 아치를 네온 불빛과 현대적 재료로 조합하여 포스트모던 건축의 유희적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 필립 존슨(Philip Johnson)

AT&T 빌딩(현재 Sony Tower, 1984)은 상단에 치펜데일 양식의 고전 가구 모양 장식을 얹어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모더니즘이 억눌렀던 건축의 상징성을 다시 환기한 사례입니다.

 

포스트모던 건축의 영향과 의의

 

포스트모던 건축은 건축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첫째, 건축이 단순히 기능적 공간 창출을 넘어 문화적 표현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건축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대중과 감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입니다.

 

둘째, 지역성과 역사성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재료와 기술을 결합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특히 특정 도시나 국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셋째, 건축이 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에 유머와 아이러니를 도입해 대중과의 거리를 좁혔습니다. 건축물이 단순히 전문가의 산물이 아니라, 시민들이 쉽게 다가가고 즐길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은 과도한 장식과 상징 남용으로 인해 피상적이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일부 건축물은 시대가 지나면서 본래의 의미를 잃고, 단순한 외형적 실험으로 치부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1990년대 이후에는 하이테크 건축, 해체주의 건축 등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며 주류에서 밀려났습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건축이 남긴 “다양성”과 “맥락의 존중”이라는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건축적 기준으로 남아 있습니다.

 

해체와 융합 속에서 열린 건축의 자유

 

포스트모던 건축은 모더니즘의 차가운 이성을 넘어, 건축에 감성과 다양성을 불어넣은 흐름이었습니다. 역사적 양식을 자유롭게 차용하고, 상징과 유머를 통해 대중과 소통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건축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문화적 텍스트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건축가가 지속가능성, 첨단 기술, 지역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도, 포스트모던 건축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것은 바로 건축이 단일한 해답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과 표현을 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건축을 하나의 정답이 아닌 여러 해석이 공존하는 열린 장으로 바꾼 전환점이었으며, 앞으로도 현대 건축 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입니다.

포스트모던 건축 – 해체와 융합으로 열린 새로운 건축의 장
포스트모던 건축 – 해체와 융합으로 열린 새로운 건축의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