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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건축가 시리즈 10. “Less is More” –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 철학과 작품 세계

by kkhin5124 2025. 9. 25.

모던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

 

20세기 건축사에서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는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힙니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그의 이름과 함께 반드시 언급되는 문구는 “Less is More(적을수록 더 풍부하다)”입니다. 이는 단순성을 통해 건축의 본질을 드러내려는 철학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건축만 아니라 가구, 제품 디자인, 도시 계획 등 다양한 분야에 여전히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 철학, 대표작, 그리고 현대 건축에 남긴 영향을 심층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그의 유산이 왜 여전히 의미 있는지 이해해 보겠습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 철학 – 단순함 속의 본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철학은 철저히 단순성(simplicity)과 정직성(honesty)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건축은 장식이 아니라 공간을 만드는 예술”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 건축은 불필요한 장식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재료가 가진 고유한 성질을 존중하며,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석재나 대리석을 사용할 때 얇은 장식용 판으로 덮는 대신, 그 자체의 질감과 무게감을 드러내도록 했습니다. 또한 유리와 철강을 사용해 투명성과 개방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의 건축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미니멀한 것이 아니라, 재료가 가진 본질을 드러내는 미학을 구현했다고 평가됩니다.

 

또한 그는 공간을 ‘닫힌 상자’로 보지 않고, 내부와 외부가 끊임없이 교류하는 유기적 관계로 보았습니다. 대형 유리창과 개방형 평면은 이러한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건물 안에 있으면서도 자연과 도시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하여, 인간과 환경을 분리하지 않고 연결하려 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신념은 ‘God is in the details(신은 디테일 속에 있다)’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이는 미스가 단순히 전체적인 형태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세부적인 연결부, 재료의 마감, 구조의 비율까지 집요하게 고민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그의 건축 철학은 “단순하지만 완벽한 디테일을 통해 건축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는 믿음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 -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미스 반 데어 로에 -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대표작 – 미니멀리즘의 결정체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철학은 구체적인 건축물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모더니즘 건축의 원칙을 실험하고 구체화한 산물입니다.

 

  •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929)

스페인 바르셀로나 국제박람회를 위해 건축된 이 전시관은 미스의 철학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구조는 단순하지만, 대리석·트래버틴·유리·강철 등 고급 재료를 절제된 방식으로 배치해 공간의 순수함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수평과 수직이 명확하게 교차하는 구조 속에서, 물이 흐르는 반사 수조와 투명한 유리가 공간을 확장해, 건축이 단순히 물리적 경계가 아니라 심리적 경험을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건축물은 임시로 지어졌다가 철거되었지만, 건축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1986년 원형 그대로 복원되었습니다.

 

  • 판스워스 하우스(1951)

미국 일리노이주 폭스강변에 위치한 이 주택은 ‘유리 상자’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현대 주거 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꾼 작품입니다. 철제 기둥 위에 올려진 단순한 박스 형태의 집은 유리 벽을 통해 자연 풍경과 완전히 연결됩니다. 이는 단순히 거주 공간을 넘어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구현한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판스워스 하우스는 때때로 ‘주거의 불편함’을 이유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실험적 건축으로서 건축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임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 시그램 빌딩(1958)

뉴욕 맨해튼에 세워진 초고층 빌딩으로, 미스와 그의 제자 필립 존슨이 함께 설계했습니다. 시그램 빌딩은 ‘국제양식’의 교과서라 불릴 만큼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브론즈 색 유리 커튼월 외관과 철제 구조는 당시 빌딩 디자인의 새로운 표준이 되었고, 이후 세계 각국에서 유사한 양식의 고층 빌딩들이 쏟아져 나오게 했습니다. 또한 건물 앞에 설치된 넓은 공개 광장은, 고층 건축이 도시 속 공공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제시한 혁신적인 요소였습니다.

 

이 외에도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 IIT 캠퍼스 설계 등 다수의 건축이 그의 철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현대 건축에 남긴 영향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단순히 몇몇 건축물이 아니라, 건축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꾼 것입니다. 그는 기능주의와 구조적 정직성을 강조하며, 화려한 장식에 의존하던 전통 건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의 건축 언어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그는 국제양식(International Style) 확산의 주역이었습니다. 193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전시에서 ‘국제양식’이라는 개념이 처음 대중에게 소개될 때, 그의 작품은 대표적인 사례로 포함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건축의 미적 언어가 국경을 넘어 공유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둘째, 그는 교육자의 역할도 매우 컸습니다. 1938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시카고 일리노이 공과대학교(IIT) 건축학과 학장으로 재직하며 새로운 세대의 건축가들을 길러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이후 미국과 유럽 건축계에서 큰 영향을 끼쳤고, 미스의 철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셋째, 그는 오늘날 도시 풍경을 지배하는 유리 커튼월 고층 건물의 원형을 제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고층 오피스 빌딩의 투명한 유리 외관은 사실상 미스의 시그램 빌딩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단순한 미학적 영향만 아니라, 건축 재료 산업, 시공 기술, 도시 계획의 흐름까지 바꾼 혁신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대 건축의 ‘개방형 평면(Open Plan)’ 개념을 보편화했습니다. 이는 내부 공간의 벽체를 최소화하여 자유로운 배치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오늘날 주거 공간과 오피스 설계에서 필수적인 개념이 되었습니다.

 

‘적을수록 더 풍부하다’의 영원한 울림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단순한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을 ‘공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행위’로 끌어올린 인물입니다. 그는 화려한 장식을 거부하고, 단순성과 정직성 속에서 새로운 미학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대표작들은 여전히 건축 교과서에 실리고, 도시의 풍경 속에서 변형된 형태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Less is More”라는 철학은 단순히 시대적 유행이 아니라, 건축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보편적 원리로 남았습니다. 오늘날 지속 가능 건축, 친환경 디자인, 미니멀리즘 트렌드 역시 그의 철학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남긴 유산은 과거의 기념비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영원한 교훈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