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축

건축가 시리즈22. 빛과 기하의 건축가, 아이엠 페이(I. M. Pei) – 현대 건축에 남긴 투명한 유산

by kkhin5124 2025. 11. 6.

유리와 빛으로 세상을 설계한 건축가

 

아이엠 페이(Ieoh Ming Pei, 1917~2019)는 20세기 건축사에서 ‘투명함의 미학’을 완성한 건축가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중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며 동서양의 미감을 결합한 독창적인 건축 언어를 구축했습니다. 페이의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에 머물지 않고, 빛·기하학·맥락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통해 공간의 본질을 탐구했습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홍콩의 뱅크 오브 차이나 타워, 미국의 록앤드롤 명예의 전당 등 그의 대표작은 세계 각지의 도시 풍경을 상징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본 글에서는 아이엠 페이의 생애와 건축 철학, 주요 작품, 그리고 현대 건축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그의 건축세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동서양을 잇는 생애와 배경

 

아이엠 페이는 1917년 중국 광저우에서 태어나 상하이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중국의 전통 정원과 고전 건축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이후 193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근대건축의 거장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와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의 지도를 받으며 모더니즘의 사상을 배웠습니다.

 

페이는 르코르뷔지에나 미스 반 데어 로에처럼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건축을 기반으로 하되, 감성적이고 문화적인 요소를 건축 안에 녹여내고자 했습니다. 그는 “건축은 단지 형태가 아니라, 사람과 장소의 관계를 구축하는 예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서양의 근대건축 원리와 동양의 철학적 사유를 융합하며, ‘맥락과 조화’를 중시하는 독자적인 건축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아이엠 페이의 건축 철학 – 기하학, 빛, 맥락의 조화

 

페이의 건축은 세 가지 핵심 원칙으로 요약됩니다. 첫째, 기하학적 질서입니다. 그는 단순한 형태 속에서 엄격한 비례와 조화를 추구했습니다. 삼각형, 사각형, 원형 등 기본 도형을 기반으로 한 그의 설계는 수학적이면서도 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루브르 피라미드는 이러한 기하학의 상징적인 예로, 고전적인 궁전 건축과 현대적 유리구조가 조화롭게 공존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둘째, 빛의 활용입니다. 그는 유리와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건축이 주변 환경과 시각적으로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그의 유리 파사드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과 날씨에 따라 표정을 바꾸며 건축을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뱅크 오브 차이나 타워는 햇빛에 따라 반사되는 입면의 각도가 달라지며 도시의 풍경과 호흡합니다.

 

셋째, 맥락적 접근입니다. 그는 언제나 건물이 세워질 장소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존중했습니다. 파리 루브르 피라미드 프로젝트 당시,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그는 “새로운 것은 기존의 질서 속에서 빛나야 한다”라고 말하며 옛 궁전의 중심축과 시각적 연속성을 유지했습니다. 결국 완공 후 루브르는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거듭났고, 지금은 파리의 대표적 명소가 되었습니다.

 

아이엠페이 -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의 전경
아이엠페이 -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대표 작품 분석 – 루브르 피라미드, 뱅크 오브 차이나 타워, 록앤드롤 명예의 전당

 

1)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1989, 프랑스 파리)

루브르 피라미드는 아이엠 페이의 대표작으로, 세계적인 논란과 동시에 찬사를 받은 건축물입니다. 루브르의 지하를 관람객 출입구로 바꾸는 혁신적인 구상 아래, 페이는 고대 이집트의 상징인 피라미드 형태를 현대적인 유리와 철골 구조로 재해석했습니다. 약 673개의 유리 패널로 이루어진 투명한 구조물은 주변의 고전적 석조 건축과 대조되면서도, 대칭과 축선의 원리에 따라 절묘한 균형을 이룹니다. 오늘날 루브르 피라미드는 ‘현대와 전통의 공존’을 상징하는 건축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 뱅크 오브 차이나 타워 (1990, 홍콩)

홍콩의 중심 업무지구에 위치한 뱅크 오브 차이나 타워는 높이 367.4m로 완공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외관은 마름모꼴 유리 패널이 엇갈리며 구성된 기하학적 구조로, 대나무가 위로 솟아오르는 형상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이는 중국 문화에서 번영과 성장을 상징하는 대나무의 이미지를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구조적 효율성과 미적 감각이 결합된 이 건물은 아시아 모더니즘 건축의 상징으로 평가받습니다.

 

3) 록앤드롤 명예의 전당 (1995, 미국 클리블랜드)

페이는 음악의 역동성과 흐름을 건축적으로 시각화했습니다. 유리 피라미드형 입면과 원통형 볼륨, 직사각형 블록 등이 겹겹이 이어지는 구성은 록음악의 다양성과 즉흥성을 상징합니다. 내부는 음악 전시와 공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되어, 관람자가 ‘음악 속을 걷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이 건물은 기능적이면서도 조형적으로 완성도 높은 문화시설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현대 건축에 남긴 영향과 평가

 

아이엠 페이는 70여 년간 활동하며 세계 각국의 공공건축, 박물관, 기업 본사, 교육시설을 설계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유리와 강철로 만든 현대 건축가가 아니라, 동양적 절제와 서양적 합리성을 융합한 ‘문화의 번역자’로 불립니다. 그의 작품은 기술적 진보를 담으면서도 인간적 감성을 잃지 않았고, 도시 속에서 ‘빛의 조각’처럼 주변과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그는 건축이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기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루브르 피라미드의 경우 단순한 입구의 확장이 아니라, 박물관과 도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공공공간의 재해석이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이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역사 공간의 현대화’라는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생애 말기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미국 대통령 자유훈장(1979), 프리츠커상(1983)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습니다. 페이는 2019년 10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건축은 여전히 도시 속에서 투명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시간과 빛을 설계한 건축의 시인

 

아이엠 페이는 건축을 ‘시간과 빛의 예술’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유리를 통해 투명함을 구현하면서도, 그 안에 문화와 철학을 담아냈습니다. 그의 건축은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고, 인간과 공간, 도시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루브르의 피라미드가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리가 되었듯, 그의 철학은 오늘날의 건축가들에게도 “새로움은 맥락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결국 아이엠 페이의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는 투명한 그릇이자, 문화의 기억을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는 동서양을 넘어 ‘보편적 아름다움’을 탐구한 진정한 세계 건축가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