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건축을 추구한 모셰 사프디
건축은 단순히 공간을 짓는 기술을 넘어,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을 새롭게 정의하는 문화적 행위입니다. 특히 20세기 후반과 21세기를 아우르며 활동한 건축가 모셰 사프디(Moshe Safdie, 1938~ )는 ‘사람을 위한 건축’을 철학의 중심에 두고 도시와 건축의 관계를 새롭게 탐구한 인물입니다. 그는 캐나다 몬트리올 만국박람회(EXPO 67)에서 발표한 ‘해비타트 67(Habitat 67)’을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주거·문화·종교·교육시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창적인 건축 언어를 발전시켰습니다.
사프디의 건축은 모더니즘 이후의 차가운 기능주의를 넘어 인간적 체험, 자연과의 조화, 사회적 책임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독자적 궤적을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생애와 건축 철학, 대표작품, 그리고 현대 건축에서 차지하는 의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모셰 사프디의 생애와 건축적 배경
모셰 사프디는 1938년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나 15세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하였습니다. 이후 맥길대학교(McGill University)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국제적 감각을 익혔습니다. 학생 시절 이미 주목할 만한 졸업 논문을 작성했는데, 바로 이것이 훗날 ‘해비타트 67’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대규모 도시화와 주거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20세기 중반 급격히 확장하던 도시 속에서 획일적 아파트가 양산되는 현실은 인간의 삶을 획일화하고 소외감을 낳는다고 보았습니다. 사프디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단위 주거 모듈을 조합하면서도, 각 가구가 독립성과 자연과의 접촉을 누릴 수 있는 방식”을 연구했습니다. 이러한 실험적 시도는 1967년 몬트리올 만국박람회에서 공개된 ‘해비타트 67’을 통해 현실화하였습니다.
사프디는 이후 자신의 건축 사무소(Safdie Architects)를 설립하고, 북미를 비롯해 아시아·중동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배경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이스라엘의 역사적 맥락, 그리고 다문화적 환경에서의 경험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독창적인 건축 세계관으로 이어졌습니다.
건축 철학 – 인간적 경험과 자연과의 조화
사프디의 건축 철학은 크게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 키워드는 1. 인간 중심성, 2. 자연과의 조화, 3. 공동체성입니다.
첫째, 그는 건축이 인간의 삶을 품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녔습니다. 이는 거주자의 시선, 생활 동선, 빛과 공기의 흐름 같은 체험적 요소를 중시하는 설계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단순히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건축이 아니라, 사용자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했습니다.
둘째, 자연과의 연결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현대 도시 건축이 자연과 단절되면서 인간성의 상실을 가져온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의 건축은 채광, 통풍, 녹지와의 연계, 바다·강과 같은 지형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반영합니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 2010)는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는 동시에 수변 경관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셋째, 사프디는 공동체적 삶을 중시했습니다. 이는 도시화 속에서 잃어버린 이웃 간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의도와 연결됩니다. 그는 공용 공간, 보행로, 테라스 등을 설계에 포함해 사회적 교류를 촉진하려 했습니다. 이는 ‘해비타트 67’에서 이미 뚜렷이 드러난 특징으로, 현대 공동 주거의 대안적 모델로 평가받습니다.
대표작과 건축적 성취
사프디의 대표작은 세계 각지에 걸쳐 있으며, 각각의 맥락에 맞게 독창적으로 설계되었습니다.
- 해비타트 67 (몬트리올, 1967)
사프디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작품입니다. 콘크리트 모듈을 쌓아 올린 집합 주거 단지로, 각 세대가 독립된 정원과 테라스를 가질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는 기존 아파트의 획일성과 대비되며, 주거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 마리나 베이 샌즈 (싱가포르, 2010)
세 개의 고층 타워와 그 위를 연결하는 스카이파크로 이루어진 초대형 복합리조트입니다. 도시의 상징성이자 관광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며, 현대 건축의 기술적 도전과 조형미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 예루살렘 홀로코스트 역사관 – 야드 바셈 확장 (2005)
유대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반영한 작품입니다. 절제된 콘크리트 구조와 빛의 연출을 통해 비극과 희망을 동시에 표현했습니다. 이는 사프디의 문화·기념 건축에서의 섬세한 접근을 잘 보여줍니다.
카네기 홀 확장 및 교육센터 (뉴욕, 2003), 캔자스 시티 공공도서관 확장 (2007) 등도 사프디의 사회적 책임감을 드러내는 프로젝트들입니다. 이처럼 그는 주거, 문화, 교육, 종교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세계적 영향력을 유지했습니다.
현대 건축 속에서의 의미와 평가
사프디는 현대 건축사에서 ‘인간 중심적 모더니즘의 계승자’로 평가됩니다. 미니멀리즘이나 하이테크 건축이 기능성과 조형미를 강조하는 동안, 그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살아가는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는 현대 도시가 직면한 주거 문제, 환경 문제, 공동체 해체 문제에 여전히 유효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특히 ‘해비타트 67’은 완벽한 대안 주거 모델로 확산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공동주택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싱가포르, 중국, 인도 등 아시아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서 그의 자연 친화적 설계 철학이 반영되며, 글로벌 건축 담론에 기여했습니다.
비평가들은 그를 “현대 도시문제에 대한 낙관적 실험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기술과 사회적 이상을 결합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건축가라는 의미에서 입니다.
모셰 사프디의 유산과 오늘의 시사점
모셰 사프디는 반세기 넘는 활동을 통해 건축이 인간 삶에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어왔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 실험이자 도시와 자연을 연결하는 다리였습니다.
오늘날 기후 위기와 도시 밀집 문제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사프디가 제시한 철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효율과 자본 논리에 밀려 인간성과 공동체가 소외되지 않도록 건축이 해야 할 역할을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의 건축 세계는 미래 세대에게도 중요한 영감을 제공할 것입니다.
'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린 뉴딜이 여는 친환경 건축과 건설업의 변화 (0) | 2025.10.08 |
---|---|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건축의 조건: 휴식의 심리와 디자인 원리 (0) | 2025.10.07 |
동양건축사15. 동양 3개국 전통 주거 건축 비교: 한옥·다다미 주택·사합원의 특징과 가치 (0) | 2025.10.06 |
건축가 시리즈14. 하이테크 건축의 선구자, 리처드 로저스의 건축 철학과 대표작 (0) | 2025.10.05 |
세계건축사12. 로마네스크 건축의 특징과 역사: 중세 유럽의 돌로 지은 예술 (0) | 2025.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