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축

건축가 시리즈 12. 렘 콜하스: 현대 건축을 뒤흔든 실험적 거장

by kkhin5124 2025. 9. 29.

경계를 허무는 건축가, 렘 콜하스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건축계는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과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 1944~)가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건축물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를 넘어, 도시와 사회, 건축 담론 자체를 재구성하는 이론가로 평가받습니다. 1995년 저서 『S, M, L, XL』에서 보여준 그의 사유 방식은 기존 건축 담론을 뒤흔들었으며, 세계 곳곳에 남긴 작품은 늘 낯설고 도발적이며 실험적인 공간 경험을 제시해 왔습니다.

 

오늘날 건축학도와 실무자들이 렘 콜하스를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독특한 건축 양식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건축은 늘 현대 사회의 모순과 욕망을 투영하며, 도시와 인간이 맺는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본 글에서는 렘 콜하스의 생애와 건축 철학, 대표 작품, 그리고 건축계에 미친 영향까지 살펴보겠습니다.

 

렘 콜하스의 생애와 배경

 

렘 콜하스는 194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인도네시아에서 거주한 경험은 그에게 다문화적 감수성과 비서구적 도시 풍경에 대한 관심을 키워주었습니다. 대학 진학 후 처음에는 영화와 저널리즘을 공부했으나, 점차 공간과 도시의 문제로 관심을 확장하며 영국 건축협회 건축학교(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에서 본격적으로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건축을 단순히 ‘건물 설계’라는 틀에 가두지 않았습니다. 대신 글쓰기와 연구, 비평을 통해 건축을 사회적 담론으로 끌어올렸고, 이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된 저서 『Delirious New York(1978)』을 출간합니다. 이 책은 20세기 뉴욕 맨해튼을 ‘망상적 유토피아’로 규정하며, 고층 건물과 도시 공간이 어떻게 자본주의와 욕망을 반영했는지 해석한 작업으로, 건축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건축 철학과 OMA의 설립

 

1975년, 렘 콜하스는 동료들과 함께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를 설립합니다. OMA는 이름 그대로 ‘대도시 건축사무소’를 지향하며, 도시 규모의 문제를 다루는 건축 집단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렘 콜하스의 철학은 흔히 “프로그램적 실험”으로 불립니다. 그는 건축을 기능과 형태의 고정된 틀로 보지 않고, 사회가 요구하는 프로그램과 활동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장치로 이해했습니다. 즉, 건물은 하나의 조형물이 아니라 사회적 활동을 수용하는 유연한 플랫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강조한 또 다른 핵심은 도시성(urbanism)입니다. 렘 콜하스는 건축이 도시라는 맥락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그의 여러 프로젝트에서 잘 드러나며, 건축물이 주변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주목하게 만듭니다.

 

렘 콜하스의 대표 작품과 공간적 실험

 

렘 콜하스와 OMA는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실험적 건축을 남겼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을 살펴보면 그의 철학이 어떻게 구체화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시애틀 공공도서관(2004)

이 건축물은 도서관이라는 전통적 공간을 완전히 재해석한 사례입니다.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비정형적 외관은 도시 속에서 강렬한 시각적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내부는 책의 보관, 열람, 정보 검색, 시민 활동이 유기적으로 얽히도록 설계되어, 지식과 정보의 흐름을 건축적 동선으로 시각화했습니다.

 

  • 중국 CCTV 본사(2008)

베이징에 위치한 CCTV 본사는 전통적 마천루의 형태를 부정하며, 두 개의 타워가 연결된 거대한 고리 형태를 띱니다. 이 구조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권력, 미디어, 현대 중국의 위상을 건축적으로 드러낸 사례로 평가됩니다.

 

  • 포르투갈 카사 다 무지카(2005)

이 공연장은 다각형 형태의 덩어리 같은 외관을 지녔으며, 내부는 공연, 연습, 휴식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복합적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이는 렘 콜하스 특유의 프로그램적 실험정신이 잘 드러난 공간입니다.

 

이 외에도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쿤스탈 미술관’, 서울대 미술관, 프라다 재단 건물 등은 그의 건축 언어를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렘 콜하스: 현대 건축을 뒤흔든 실험적 거장
렘 콜하스 - 시애틀 공공도서관

건축계에 남긴 영향

 

렘 콜하스는 단순한 건축가라기보다 현대 건축의 사상가에 가깝습니다. 그의 저서와 작업은 수많은 젊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S, M, L, XL』은 13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으로, 건축을 텍스트·이미지·그래픽으로 풀어낸 독창적 형식 덕분에 건축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그는 하버드 GSD(Graduate School of Design)에서 학생들과 함께 도시 연구를 진행하며, 급변하는 세계 도시의 양상을 분석했습니다. 이 연구들은 이후 여러 논문과 출판물로 이어지며, 현대 도시계획과 건축 담론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렘 콜하스의 건축은 종종 난해하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낯섦이 건축을 고정된 규범에서 해방하는 힘이 되었고, 덕분에 건축계는 더욱 다채롭고 열린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험과 담론으로 남은 거장

 

렘 콜하스는 한 가지 양식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사회와 도시, 인간의 활동을 반영하는 건축을 실험해 왔습니다. 그의 건축은 완결된 형태의 아름다움보다는, 도시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프로그램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가 남긴 대표작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렘 콜하스가 단순한 ‘스타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을 사고의 장(場)으로 확장한 사상가였음을 보여줍니다. 앞으로도 그의 작업은 건축학계만 아니라 도시학, 사회학, 문화 연구 전반에 걸쳐 중요한 참고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