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서양건축사5. 바로크 건축의 화려함과 상징성

kkhin5124 2025. 9. 7. 10:48

바로크 건축의 화려함과 상징성: 17세기 유럽 건축양식의 정점

바로크 건축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

 
17세기 유럽은 정치적, 종교적 변화가 격렬하게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르네상스의 균형과 조화의 미학이 절정을 이룬 이후, 사람들은 더 강렬하고 감각적인 표현을 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가톨릭교회는 종교개혁으로 흔들린 신도들의 마음을 되찾기 위해 예술과 건축을 선전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태어난 건축 양식이 바로 바로크(Baroque) 양식입니다.
 
바로크라는 용어는 원래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barroco에서 유래했으며, 당시에는 과장되고 지나치게 장식적인 것을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바로크 건축은 오히려 독창성과 화려함을 상징하는 예술사적 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바로크 건축의 주요 특징

 
바로크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극적인 공간 연출입니다. 르네상스 건축이 비례와 균형에 충실했다면, 바로크 건축은 사람의 감각과 감정을 자극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건물의 내부와 외부 모두 곡선과 타원형 구조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직선보다 곡선이 강조되어 역동적인 인상을 주었습니다.
 
또한 빛의 활용 역시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내부 공간에 창문을 전략적으로 배치해 자연광이 극적으로 들어오도록 설계하거나, 벽화와 조각을 통해 빛이 흘러내리는 듯한 환영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실내를 밝히는 역할을 넘어 종교적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바로크 건축은 사람이 건축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켰습니다. 건축가들은 건물을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니라, 걷고, 들어가고, 바라보며 감각적으로 체험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예를 들어 성당 내부에 들어섰을 때, 좁은 현관에서 갑자기 탁 트인 중앙 돔 공간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극적인 전환 효과를 주었습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단순한 미학을 넘어 종교적 신비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치였습니다.
 
또한 건축과 예술의 융합도 두드러졌습니다. 르네상스가 건축, 회화, 조각을 비교적 독립적으로 다루었다면, 바로크는 이를 하나의 종합예술로 묶어냈습니다. 벽면의 기둥은 실제 구조물이 아니라 그림으로 그려 넣은 트롱프뢰유(trompe-l’œil, 눈속임 기법) 일 수도 있고, 조각상은 천장화와 연결되어 마치 건축 구조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건축과 장식 예술이 경계를 허물고 어우러지면서, 관람자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기 힘든 몰입적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크 건축의 대표적 사례

 
바로크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시작된 이 성당은 바로크 시대에 들어 미켈란젤로와 브라만테의 설계를 기반으로 완성되었으며, 특히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가 설계한 성 베드로 광장은 바로크 건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타원형의 광장은 팔을 벌려 신도를 감싸는 듯한 상징성을 지니며, 공간의 웅장함과 포용성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또 다른 예로는 산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이 있습니다. 건축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는 이 성당에서 직선과 곡선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독창적인 파사드를 만들어냈습니다.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입면의 굴곡과 곡선 구조는 역동적인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도 바로크 건축의 영향은 뚜렷했습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은 절대왕정의 권력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정원과 건축이 조화를 이루며 국가 권위와 예술적 화려함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멜크 수도원과 같은 종교 건축이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져 신앙적 웅장함을 강조했습니다.
 

바로크 건축의 사회적 의미와 영향

 
바로크 건축은 단순히 미적 양식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반종교개혁을 추진하며 신도들의 시각과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건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웅장한 성당과 광장은 신앙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교회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는 도구였습니다.
 
세속 권력 역시 바로크 건축을 활용했습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통해 보여준 궁정 문화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권력 과시의 상징이었습니다. 궁정은 정치적 무대이자 외교적 상징으로 기능했으며, 화려한 무도회와 행사들은 건축 공간이 하나의 연극 무대처럼 활용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바로크 양식은 식민지 확장과 전파를 통해 유럽 외 지역에도 퍼져나갔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라틴아메리카에 성당과 수도원을 건설하며 바로크 양식을 전파했습니다. 멕시코시티의 대성당이나 브라질 살바도르의 예수회 교회는 현지 문화와 결합한 독창적 바로크 양식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종교적 지배와 문화적 동화의 도구이기도 했으며, 오늘날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세계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바로크 건축의 영향은 건축 이외의 분야에도 이어졌습니다. 무대 미술과 도시 계획 역시 바로크적 사고방식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광장과 도로가 직선으로 뻗어 중앙 건축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방식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극적 무대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이후 근대 도시 계획의 기초가 되었으며, 현대의 상징적 공간 연출 방식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바로크건축 - 성 베드로 광장

 

바로크 건축의 의의와 현대적 가치

 
바로크 건축은 단순히 한 시대의 미적 취향을 넘어,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권력, 그리고 인간의 감각적 경험이 결합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웅장한 규모, 곡선의 역동성, 빛과 장식의 활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많은 연구자와 건축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현대의 건축가들은 직접적으로 바로크 양식을 모방하지는 않지만, 감각적 체험을 극대화하는 공간 연출이나 상징적 건축의 개념을 차용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바로크 건축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사적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