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시리즈 4. 자하 하디드의 건축 철학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분석
21세기 건축을 새롭게 정의한 건축가
건축은 단순히 기능적 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의 미학과 철학을 담아내는 예술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21세기 건축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자하 하디드(Zaha Hadid, 1950~2016)입니다. 그녀는 ‘곡선의 건축가’, ‘건축계의 이단아’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기존 건축 문법을 철저히 깨뜨린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한국 서울에 위치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그녀의 건축 철학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개관 이후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세계적 주목을 받은 공공 건축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본 글에서는 자하 하디드의 건축 철학과 그 철학이 DDP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자하 하디드의 건축 철학과 특징
자하 하디드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녀는 2004년 여성 최초로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으며, 이후 수많은 국제적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건축계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녀의 건축 철학은 전통적인 직선적이고 기하학적인 건축에서 벗어나, 유기적 곡선과 유동적 형태를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해체주의 건축(Deconstructivism)’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해체주의 건축은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양식으로, 기존 건축의 안정적 구조와 질서를 해체하고 파편화된 형태와 역동적인 공간을 강조합니다. 자하 하디드는 이를 바탕으로 건축을 ‘흐름의 예술’로 해석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곡선과 유동성: 직선 대신 곡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마치 물이 흐르는 듯한 형태를 구현합니다.
- 비정형적 공간: 기존의 네모난 건축 구조를 거부하고, 불규칙하지만 리듬감 있는 공간을 창조합니다.
- 미래적 감각: 건축이 단순히 현재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적 상상력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 기술과 디자인의 결합: 첨단 컴퓨터 설계 기술(CAD, 3D 모델링 등)을 활용하여 복잡하고 혁신적인 곡면 구조를 실현했습니다.
DDP의 건축적 배경과 설계 의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2014년에 개관한 서울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패션, 디자인, 전시, 회의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공공 건축물입니다. 위치는 서울 중구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자리에 있으며, 과거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장소를 재개발하여 건립되었습니다.
DDP는 ‘도시와 자연의 흐름을 연결하는 공간’을 목표로 설계되었습니다. 자하 하디드는 주변 도시의 맥락과 역사적 요소를 고려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그녀는 DDP를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도시와 사람, 역사와 미래가 만나는 ‘유동적 랜드스케이프(Landscape of Flow)’로 정의했습니다.
설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대규모 곡선 구조와 매끄러운 외피입니다. 건물 외관은 직선이 거의 없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며, 알루미늄 패널 약 45,000개가 서로 다른 크기와 곡률을 가지고 이어져 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도 상당히 혁신적인 건축 공법과 디지털 설계 기술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였습니다.
DDP의 공간 구성과 건축적 의미
DDP는 크게 세 가지 주요 전시 공간과 부속 시설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알림터: 국제회의, 패션쇼, 전시가 열리는 공간으로, 서울을 대표하는 디자인 행사들이 주로 개최됩니다.
- 살림터: 디자인 관련 상점, 교육 공간, 어린이 체험관 등이 위치하여 시민과 관광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 배움터: 전시와 아카이브, 디자인 연구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며, 창의적 활동과 학문적 연구를 지원합니다.
DDP의 가장 큰 건축적 특징은 ‘비정형적 곡선’과 ‘연속적 공간 경험’입니다. 건물 내부를 걸으면 직선적인 구획이 거의 없고, 마치 흐르는 듯한 공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하 하디드가 강조한 ‘경계의 해체’라는 철학을 반영한 것입니다. 즉, 내부와 외부, 과거와 현재, 사람과 도시가 경계 없이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또한 DDP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 재생의 상징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과거 동대문운동장이라는 근현대사의 흔적이 있던 공간을 미래적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에서, 서울의 역사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담아냈습니다.
자하 하디드 철학과 DDP의 의의
자하 하디드의 건축 철학은 DDP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흐름’, ‘곡선’, ‘경계의 해체’라는 키워드는 DDP 전체를 지배하는 디자인 언어입니다. 특히, 도시 속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담고자 한 그녀의 의도는 DDP의 곡선적 동선, 넓은 공공광장, 그리고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DDP는 개관 이후 다양한 국제적 행사를 유치하며 서울의 문화·관광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유지 관리 비용과 접근성 문제에 대한 비판도 존재합니다. 이는 대형 공공 건축물의 일반적 한계로 볼 수 있으며, 자하 하디드의 실험적 디자인이 가지는 숙명적인 논쟁거리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DP는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됩니다. 이는 단순히 건물 하나의 완성도가 아니라, 건축이 사회와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자하 하디드와 DDP가 남긴 유산
자하 하디드는 건축을 단순한 기능적 구조물이 아니라, 인간과 도시, 그리고 미래를 잇는 예술적 매개체로 이해했습니다. 그녀의 철학은 DDP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었으며, 이는 곡선과 흐름, 유동적 공간을 통해 서울 시민과 방문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비록 유지 관리와 같은 현실적 과제가 뒤따르지만, DDP는 자하 하디드의 건축 철학을 잘 드러낸 작품 중 하나로서, 서울을 대표하는 현대 건축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이는 건축이 단순히 ‘지어지는 공간’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과 문화를 재정의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사례입니다.
앞으로도 DDP는 자하 하디드의 건축 철학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아, 건축학적 연구와 도시문화 발전에 중요한 참고점이 될 것입니다.